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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국은 책과 정신만 남았습니다. 선생님 2007.11.16
망하는 데도 법도가 있다.
백범일지
김구 지음 / 홍신문화사
나의 점수 : ★★★★

백범이 white tiger가 아닌 것을 첨알았다. 예전에 읽을 때는 독후감까지 썼는데, 왜이리 내용이 새로운 건지. 아니면 나이들어서 읽으니 보다 내용이 잘 이해 되는 걸까.
너무나 인간적인 선생의 글을 읽으니, '마저 이게 사람의 성정이지. 맞다. 맞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자신을 속이며 사는 나는 과연 정말 사람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얼굴 붉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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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망에 빠진 나에게 오직 한 가지 희망을 주는 것은 "마의상서"중에 있는 이
구절이었다--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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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생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예로부터 천하에, 흥하여 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고
망해 보지 아니한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도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어느 나라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요,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여러 패로 갈라져 한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외국에는 아첨하고 제 동포와는 싸워서
망하는 것은 더럽게 망하는 것이다. 이제 왜의 세력이 전국에 충만하여 궐내에까지
침입하여서 대신도 적의 마음대로 내고 들이게 되었으니 우리 나라가 제2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고에 망하지 아니한 나라가 없고 천하에 죽지 아니한 사람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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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놈이 나를 끌어다가 유치장에 누일
때에는 벌써 훤하게 밝은 때였다. 어제 해질 때에 시작한 내 심문이 오늘 해뜰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처음에 내 성명을 묻던 놈이 밤이 새도록 쉬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놈들이
어떻게 제 나라의 일에 충성된 것을 알았다. 저놈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 나라를 찾으려는 일로 몇 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것과 같아서 스스로
애국자인 줄 알고 있던 나도 기실 망국민의 근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
눈에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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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김진사에게 도적 떼의 조직에 관한 것을 물었다. 그런즉 진사는
의외에도 은휘함 없이 내 요구에 응하였다.
"우리 나라의 기상이 다 해이한 이때까지도 그대로 남은 것은 벌과 도적의
법뿐이외다."
라는 허두로 시작된 김진사의 말에 의하면, 고려 이전은 상고할 길이 없으나
이조시대의 도적 떼의 기원은 이성계의 이신벌군의 불의에 분개한 지사들이 도당을
모아 일변 이성계를 따라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소위 양반들의 생명과 재물을 빼앗고
일변 그들이 세우려는 질서를 파괴하여서 불의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데서 나왔으니,
그 정신에 있어서는 두문동 72현과 같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적이라 하나 약한
백성의 것은 건드리지 아니하고 나라 재물이나 관원이나 양반의 것을 약탈하여서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구제함으로 쾌사를 삼았다. 이 모양으로 나라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법이 엄하고 단결이 굳어서 적은 무리의 힘으로 능히 5백 년간 나라의
힘과 겨루어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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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강남의 농촌을 보니 누에를 쳐서 길쌈을 하는 법이나 벼농사를 짓는 법이나
다 우리 나라보다는 발달된 것이 부러웠다. 구미 문명이 들어와서 그런 것 외에
고래의 것도 그러하였다. 나는 생각하였다. 우리 선인들은 한, 당, 송, 원, 명, 청 시대에
끊임이 없이 사절이 내왕하면서 왜 이 나라의 좋은 것은 못 배워 오고 궂은 것만
들여왔는고. 의관 문물 실준중화라는 것이 이조 오백 년의 당책이라 하건마는 머리
아픈 망건과 기타 망하기 좋은 것 뿐이요, 이용후생에 관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민족의 머리에 들어박힌 것은 원수의 사대사상뿐이 아니냐. 주자학을 주자 이상으로
발달시킨 결과는 공수위좌하여 손가락 하나 안 놀리고 주둥이만 까게 하여서 민족의
원기를 소진하여 버리니 남는 것은 편협한 당파싸움과 의뢰심 뿐이다.
오늘날로 보아서 요새 일부 청년들이 제정신을 잃고 러시아로 조국을 삼고 레닌을
국부로 삼아서 어제까지의 민족혁명은 두 번 피흘릴 운동이니, 대번에 사회주의
혁명을 한다고 떠들던 자들이 레닌의 말 한마디에 돌연히 민족혁명이야말로 그들의
전면목인 것처럼 들고 나오지 않는가. 주자님의 방구까지 향기롭게 여기던 부유들
모양으로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게 되니 한심한 일이다. 나는 반드시
주자를 옳다고도 아니하고 마르크스를 그르다고도 아니한다. 내가 청년 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를 잃지 말란 말이다. 우리의 역사적 이상, 우리의 민족성, 우리의
환경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밤낮 저를 잃고 남만 높여서 남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장한 체를 말라는 것이다. 제 뇌로, 제정신으로 생각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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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 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 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 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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