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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우기 2007.11.16

비우기

from 카테고리 없음 2007. 11. 16. 18:20

물레,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 우유 한 깡통, 담요 6장, 그리고 보잘 것 없는 평판이 자신이 가진 전부라고 말했던 간디의 글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던 법정 스님, 그의 무소유를 읽고 단순히 지적/물적/병적 흥미를 위해 이책에서 저책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아 다니던 내가 부끄럽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간다는 것,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자라 할지라도 종국에는 모두 보이지 않는 미립자로 화하여 본래 그랬던 것처럼 우주에서 가장 그럴듯한 존재 형태인 ‘무’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거스를수는 없는 도리다. 물론,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만만치 않음은 잘알고 있기에,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내세에 가지고 갈것은 오직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밖에 없다는 것을 척박한 환경속에서 스스로 체득하고 실천하는 라다크인들의 모습과 자연에 섭리에 거스름없이 한숨, 한걸음, 하루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향기가 더욱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부러워 하기보다는 할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욕심에 대뜸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법정 스님처럼 ‘나도 하루에 하나씩을 버려보자’라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목표는 하루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컴퓨터 안을 말끔한 선방처럼 바꾸는 계획이다. 무형의 것이던 유형의 것이던 몇 년 가야 들여다 보지 않을 코드들과 논문들, 엠피쓰리,문서들로 그득한 하드디스크를 비우고 겉보기에 재밌어보여 담았던 인터넷 동호회, 게임사이트, 웃긴 그림 모음들도 정리하고, 신기해 보여서 일단 깔고 보았던 프로그램들도 정리하는 것이 큰 계획의 줄기이다. 물론, 관건은 단순히 하드 디스크의 빈 공간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참되게 나를 비우는 훈련이 되느냐’ 이것이다. 비장의 계획은 더욱 고매하다. 이렇게 시작된 비우기는 만질 수 있는 것에도 확장이 되어 1년간 만지지 않았던 물건들을 전부 비워내야겠다. 물건들을 마구 버린다면 그야 말로 공해이니, 쓸만한 물건들은 아름다운 가게나 재활용 수거처를 잘 확인하는 것도 필요한 센스겠지. 그 와중에 꼭 필요한것, 필요하지 않을 것을 고르는 재주가 키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내게는 없다고, 남들이 좋다고, 남들이 부러워 할꺼라고 망상에 빠져 소유에 집착하는 꿈꿈한 마음도 덩달아 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선택과 집중, 많이 비워야 많이 채울수 있다등의 익히 들어온 격언들이다. 당연하게도, 자연은 이미 이러한 이치를 알고 실천해 왔기에 늘 그렇듯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숲은 나무들의 밀도가 높아져 간격이 줄거나, 고목들이 일정 비율 이상으로 생겨나 숲의 생태계가 위험에 처할 때, 건기를 이용하여 나뭇가지들 사이의 마찰로 스스로 불을 일으켜 자신을 태우고, 그러한 과정에서 잡스러운 종들은 타 없어지고 그것을 거름으로 하여 새로운 종과 새로운 생태 고리를 만들어 간다고 한다. 자연에서 나온 사람만이 오직 눈앞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릇된 마음으로 상처주고, 병들게 하지는 않는지 즐겨찾기를 비우고, 내문서를 비우며 반성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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