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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러리스트 2007.12.08

테러리스트

from 카테고리 없음 2007. 12. 8. 06:41


하루는 어떤 청년 동지 한 사람이 거류민단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이봉창이라
하였다.(나는 그때에 상해 거류민단장도 겸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일본서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독립운동에 참예하고 싶어서 왔으니 자기와 같은 노동자도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가 하였다. 그는 우리말과 일본말을 섞어 쓰고
임시정부를 가정부라고 왜식으로 부르므로 나는 특별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민단 사무원을 시켜 여관을 잡아주라 하고 그 청년더러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또 만나자 하였다.
며칠 후였다. 하루는 내가 민단 사무실에 있노라니 부엌에서 술 먹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청년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당신네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안 죽이오?"
이 말에 어떤 민단 사무원이,
"일개 문관이나 무관 하나도 죽이기가 어려운데 천황을 어떻게 죽이오?"
한즉, 그 청년은,
"내가 작년에 천황이 능행을 하는 것을 길가에 엎드려서 보았는데, 그때에 나는
지금 내 손에 폭발탄 한 개만 있었으면 천황을 죽이겠다고 생각하였소."
하였다.
나는 그날 밤에 이봉창을 그 여관으로 찾았다. 그는 상해에 온 뜻을 이렇게
말하였다.--
"제 나이가 이제 서른 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 한 해를 더 산다하여도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 늙겠으니까요.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은
대강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이씨의 이 말에 내 눈에는 눈물이 찼다.
이봉창 선생은 공경하는 태도로 내게 국사에 헌신할 길을 지도하기를 청하였다.
나는 그러마 하고 쾌락하고 1년 이내에는 그가 할 일을 준비할 터이나 시방
임시정부의 사정으로는 그의 생활비를 댈 길이 없으니 그동안 어떻게 하려는가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는 철공에 배운 재주가 있고 또 일어를 잘하여 일본서도 일본
사람으로 행세하였고, 또 일본 사람의 양자로 들어가 성명도 목하창장이라 하여
상해에 오는 배에서도 그 이름을 썼으니, 자기는 공장에서 생활비를 벌면서 일본 사람
행세를 하며 언제까지나 나의 지도가 있기를 기다리노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그에게, 나하고는 빈번한 교제를 말고 한 달에 한 번씩 밤에 나를
찾아와 만나자고 주의시킨 후에 일인이 많이 사는 홍구로 떠나보냈다.
수일 후에 그가 내게 와서 월급 80원에 일본인의 공장에 취직하였노라 하였다.
그 후부터 그는 종종 술과 고기와 국수를 사 가지고 민단 사무소에 와서 민단
직원들과 놀고 술이 취하면 일본 소리를 잘하므로 '일본경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느 날은 하오리에 게다를 신고 정부 문을 들어서다가 중국인 하인에게 쫓겨난
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동녕 선생과 기타 국무원들에게 한인인지 일인인지
판단키 어려운 인물을 정부 문 내에 출입시킨다는 책망을 받았고, 그때마다 조사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다고 변명하였으나 동지들은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이럭저럭 이씨와 폭탄도 돈도 다 준비가 되었다. 폭탄 한 개는 왕웅을 시켜 상해
병공창에서, 한 개는 김현을 하남성 유치한테 보내어 얻어온 것이니 모두
수류탄이었다. 이 중에 한 개는 일본 천황에게 쓸 것이요, 한 개는 이씨 자살용이었다.
나는 거지 복색을 입고 돈을 몸에 지니고 거지 생활을 계속하니 아무도 내 품에
천여 원의 큰 돈이 든 줄을 아는 이가 없었다.
12월 중순 어느 날, 나는 이봉창 선생을 비밀리 법조계 중흥여사로 청하여 하룻밤을
같이 자며 이 선생이 일본에 갈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논을 하였다. 만일 자살이
실패되어 왜 관헌에게 심문을 받게 되거든 이 선생이 대답할 문구까지 일러주었다. 그
밤을 같이 자고 이튿날 아침에 나는 내 헌옷 주머니 속에 돈뭉치를 내어 이봉창
선생에게 주며 일본 갈 준비를 다하여 놓고 다시 오라 하고 서로 작별하였다.
이틀 후에 그가 찾아왔기로 중흥여사에서 마지막 한 밤을 둘이 함께 잤다. 그때에
이씨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일전에 선생님이 내게 돈뭉치를 주실 때에 나는 눈물이 났습니다. 나를 어떤
놈으로 믿으시고 이렇게 큰 돈을 내게 주시나 하고, 내가 이 돈을 떼어 먹기로, 법조계
밖에는 한 걸음도 못 나오시는 선생님이 나를 어찌할 수 있습니까. 나는 평생에
이처럼 신임을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요, 또 마지막입니다. 과시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영웅의 도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길로 나는 그를 안공근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선서식을 행하고 폭탄 두 개를
주고 다시 그에게 돈 3백원을 주며 이 돈은 모두 동경까지 가기에 다 쓰고 동경 가서
전보만 하면 곧 돈을 더 보내마고 말하였다. 그리고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처연한 빛이 있던 모양이어서 이씨가 나를 돌아보고,
"제가 영원한 쾌락을 얻으러 가는 길이니 우리 기쁜 낯으로 사진을 찍읍시다."
하고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띄운다. 나도 그를 따라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김구선생님의 백범일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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